황당한 어원이 있는 살구에 대한 이야기이다. 살구에 얽힌 여러 가지 이야기들, 어원에 담긴 살구의 역사, 살구꽃이 어사화가 된 까닭, 장수의 비결인 살구씨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살구에 얽힌 이야기들
살구와 관련한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보겠다. 먼저 첫 번째, 조선시대 과거시험에 장원급제하면 모자에 어사화를 꽂고 금의환향했다. 임금님이 내려준 꽃이어서 어사화인데, 인터넷을 검색하면 무궁화부터 능소화, 심지어 개나리까지 다양한 꽃 이름이 거론된다. 하지만 정답은 '잘 모른다' 또는 '그때그때 달라요'이다. 어쩌면 '꽃이 아니다'가 올바른 답일 수도 있다. 종이를 오려서 만든 종이꽃인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종이꽃은 아니었고 역사상 최초의 어사화는 살구꽃이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두 번째 이야기를 보자. 살구나무 숲을 한자로는 '행림'이라 쓴다. 의사를 높여 부를 때, 의술이 높은 명의를 행림이라고도 한다. 살구와 의사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셋째,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동요를 살펴보자.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대부분 과일나무가 그렇듯 요즘 살구나무는 과수원이 아니면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예전에는 달랐다. 동요 <고향의 봄> 가사에서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 예전에는 진달래꽃만큼이나 흔했던 것이 복숭아꽃이고 살구꽃이었다. 그렇다면 왜 마을마다 살구나무를 그렇게 많이 심었던 걸까?
어원에 담긴 살구의 역사
살구는 동서양에서 모두 즐겨 먹는 과일이다. 한국, 중국, 일본을 중심으로 동양에도 있고 유럽에서도 오래전부터 재배해왔다. 하지만 태생은 동양 과일이었다. 태고 때부터 자랐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지리서 『산해경』에도 살구가 나온다. "영산에는 복숭아, 오얏, 매화, 살구나무가 많다"라고 나온다. 살구는 복숭아, 오얏인 자두, 매화와 함께 그곳에서 자라는 나무다. 모두 먼 옛날부터 동양에서 자생했던 동북아 대표 과일이다. 고대 동양에서는 이 네 가지 과일 모두에 특별한 약효가 있다고 믿었다. 그런 맥락에서 재미있는 것이 살구의 어원이다. 살구 글자 뜻을 그대로 풀이하면, 개를 죽이는 열매여서 살구가 됐다는 것이다. 좀 더 풀이하면 개고기를 먹고 체했을 때 살구 내지 살구씨를 먹으면 치료할 수 있다는 말을 개를 죽이는 살구라고 표현한 것이다. 살구가 약재로서도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살구나무 행은 그저 나뭇가지에 살구나무가 열려있는 모양을 본 따서 만든 상형문자라는 것이다. 영어로 살구는 '아프리코트'인데 영어 어원에서도 서양에 살구가 전해진 과정을 포함해 독특한 역사를 찾아볼 수 있다. 먼저 아프리코트의 어원은 라틴어를 뿌리로 본다. 로마인들은 살구를 '말룸 프래코쿰'이라고 불렀다. 이 말이 여러 나라 언어를 거치며 변하고 변해 영어 아프리코트가 됐다. 기원전 1세기 살구를 처음 본 로마인들은 살구를 복숭아의 일종이라고 생각했다. 복숭아꽃이나 살구꽃이 비슷한 데다가 옛날 로마에 전해진 종자는 열매도 비슷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살구가 복숭아보다 꽃도 빨리 피고 열매도 더 빨리 열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조생종 복숭아 열매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다시 어원 이야기로 돌아와서 라틴어 프래코쿰이 영어 아프리코트로 바뀌는 과정을 추적해 보면, 살구가 어떤 경로를 통해 로마에서 유럽 전역으로 퍼졌는지도 알 수 있다. 로마인들이 부르던 이름은 먼저 동로마 지역인 비잔틴이 그리스어로 전해졌다. 이어 아랍어 그리고 포르투칼어를 거쳐 스페인어 중에서도 카탈루냐어, 프랑스어를 통해 1550년 무렵의 중세 영어를 거쳐 지금의 영어가 됐다. 약 1,500년에 걸쳐 유럽을 돌고 돌아 전해진 살구의 전파 경로가 영어 단어 하나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셈이다.
살구꽃, 어사화가 된 까닭
임금님은 언제부터 어사화를 하사했으며 왜 하필 살구꽃이었을까? 일단 어사화는 중국에서 시작해 우리나라에 전해진 풍속이다. 어사화의 유래에 대해 당나라 17대 황제 의종이 과거에 새로 급제한 선비들이 동강에 모여 연회를 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꽃을 꺾어 술과 함께 금 쟁반에 담아 보내며 머리에 꽂고 술을 마시도록 한 것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의종이 꽃을 꺾어 보낸 이유는 장원급제의 영광을 축하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어떤 꽃을 보냈는지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십중팔구 살구꽃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살구꽃이 필 때의 제비 그림은 출사를 꿈꾸는 선비에게 소원을 담은 그림이 되었고, 사람들은 꽃병에다 살구꽃 그림을 새겨 문갑에 올려놓고 밤새도록 글을 읽으며 관직에 오르는 꿈을 품었다고 한다. 처음 살구꽃 핀 정원에서 장원급제 축하잔치를 열고 살구꽃을 어사화로 내려 보낸 이유는 과거 시험 발표가 살구꽃과 앵두꽃이 만발할 무렵인 이른 봄에 열렸기 때문이다. 살구꽃이 장원급제의 상징이 되고 어사화가 된 내력이다.
장수의 비결, 살구씨
살구는 옛날부터 몸에 이로운 과일로 꼽혔다. 지금도 인터넷을 찾아보면 살구의 효능에 대한 정보가 쏟아져 나온다. 금단이라는 약이 있다. 먹으면 죽지 않고 신선이 된다는 약 혹은 신선이 복용하는 약으로 알려져 있는데, 금단을 만들 때 들어가는 재료 중 하나가 살구씨다. 몸에 좋다고 알려진 만큼 살구 내지 살구씨는 다양한 음식에도 쓰였다. 행락은 쌀과 살구씨 그리고 설탕을 넣어 끓이는 죽인데, 예전에는 한식 또는 대보름 절식으로 멀었다. 맛도 맛이지만 추위를 쫓는데 좋고 가래를 없애준다고 한다. 살구의 효능이 특별하다고 믿었기 때문인지 외교 사절의 선물로도 쓰였다. 이런 맥락에서 살구나무는 곧 실력 있는 의사를 상징하기도 했다. 한의학에서는 명의를 행림이라고 하는데 이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이 있다. 중국 삼국시대에 동봉이라는 의사가 있었는데, 오나라 사람으로 관우를 치료한 화타, 장중경과 함께 삼국시대 3대 명의로 꼽혔다는 인물이다. 의술에 정통한 동봉은 수많은 사람들의 질병을 치료해 주었는데 돈을 받지 않았다. 다만 치료의 대가로 자신의 정원에 살구나무를 심게 했다고 한다.
살구는 너무 많이 먹으면 위험할 수도 있다
살구는 건강에 좋은 과일이지만, 살구씨를 과다 섭취하면 위험할 수 있다는 점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살구씨에는 '아미그달린'이라는 성분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체내에서 분해되면서 청산과 유사한 독성 물질을 생성할 수 있다. 특히 생살구씨를 과다 섭취하면 메스꺼움, 두통, 어지러움, 심한 경우 호흡 곤란을 유발할 수도 있어 주의해야 한다. 물론 소량의 살구씨는 전통적으로 약재로 사용되거나, 한방에서 기침 완화와 소화 촉진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과다 섭취는 피해야 한다. 일부 국가에서는 살구씨의 독성을 고려하여 식품으로 판매하는 것을 제한하거나 경고 문구를 붙이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살구는 달콤하고 건강한 과일이지만, 씨앗을 함부로 많이 먹지 않는 것이 중요하며, 적정량만 섭취하는 것이 안전한 방법이다.
살구는 장수를 상징하는 '오래 사는 과일'이다
살구는 동양과 서양에서 모두 장수를 상징하는 과일로 여겨져 왔으며, 특히 중국과 한국에서는 오래 사는 사람들의 식단에서 자주 발견되는 건강 과일로 알려져 있다. 살구에는 항산화 성분(베타카로틴, 폴리페놀), 비타민 A, 비타민 C, 칼륨 등 장수를 돕는 영양소가 풍부하여, 꾸준히 섭취하면 면역력을 높이고 노화를 방지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특히, 히말라야 지역의 훈자부족은 장수 마을로 유명한데, 이들의 주요 식단 중 하나가 바로 살구이다. 훈자족은 살구를 신선하게 먹거나 말려서 저장식품으로 활용하며, 살구씨 오일을 피부 관리와 건강 유지에 사용하기도 한다. 또한, 살구는 동양 문화에서 복을 가져오는 과일로도 여겨져, 명절이나 특별한 행사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길한 과일이다. 이러한 이유로 살구는 단순한 과일이 아니라, 건강과 장수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오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특별한 과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