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 / 2022. 10. 12. 23:38

한국에만 존재하는 과일, 참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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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만 존재하는 과일, 참외
한국에만 존재하는 과일, 참외

조선의장대, 참외 장식을 들고 행진하다

고려나 조선시대 국왕이 참가하는 국가적인 의례나 행차에는 통치자의 권위를 상징하는 다양한 깃발과 의장이 동원되었다. 그런데 이런 임금의 행차용 의장에 동원됐다. 정확하게는 참외를 형상화한 의장용 무기다. 입과라고 하는데 불은색 칠을 한 자루 끝에 참외 모양의 쇠 또는 나무 뭉치를 매달았다. 그리고는 은색으로 칠한 것을 은립과, 금칠을 한 것을 금립과라고 불렀던 것이다. 사실 참외는 무력이나 권위를 나타내기 힘든 과일이다. 그런데도 굳이 권위의 상징인 의장용 무기로 사용한 까닭은 무엇일까?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해 여러 박물관의 도자기 전시실을 가보면 다양한 상징물로 쓰인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고려청자나 조선백자 중에는 참외 모양의 병이나 주전자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참외가 무엇이기에 이렇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을까? 

 

다복과 다산의 상징물인 참외

참외 넝쿨은 끊임없이 뻗어나가며 계속해 열매를 맺기 때문에 번창의 의미로 해석됐고, 그 속에는 무수히 많은 씨앗이 들어있기 때문에 자손을 많이 낳는 다산의 심볼이 됐다. 국왕 행차에 참외 모형을 들고 행진했던 것도 다복과 다산의 상징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정도전은 부모가 참외밭에서 나눈 사랑의 결실로 태어난 인물이다. 그것도 양반과 노비 사이에 이뤄진 신분을 초월한 사랑의 결과였다. 정도전의 어머니는 우이동이라는 양반의 노비였다. 정도전의 부친은 정운경으로 훗날 형부상서까지 지내지만 젊었을 때는 집안이 몇 대째 관직에 오르지 못했던 몰락한 시골 양반집 자손이었다. 그러니 정도전 어머니와 사랑을 나눌 당시만 해도 시골 한량에 불과했다. 집안의 여자 노비가 밖에서 몰락한 양반 청년과 눈이 맞아 아이를 낳았는데도 주인이었던 우이동은 정도전이 태어나자 노비문서에서 어미의 이름을 빼주었을 뿐만 아니라 어린 정도전 역시 무척 귀여워 했다. 그러면서 집안사람들에게 이 아이가 나중에 커서 큰 인물이 될 것이니 함부로 대하지 말라며 당부까지 한다. 태조 왕건을 도와 고려 건국에 크게 기여했던 최응의 출생도 참외와 관련이 있다. 최웅을 임신했을 때 집에 있는 오이 덩굴에 느닷없이 참외가 열렸다. 이를 본 마을 사람이 궁예에게 알리자 "사내아이를 낳으면 나라에 이롭지 못할 것이니 절대 키우지 말라"라고 했다. 하지만 출산 후 몰래 숨겨서 키웠는데 장성해서 학문에 통달한 대학자가 되어 궁예의 신하가 되었다. 사실 참외가 상서로움의 상징이었다는 뚜렷한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앞의 여러 사례에서 보듯이 우리 조상님들이 특별한 느낌을 가졌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서민들의 굶주린 배를 채워주었던 여름 식량

참외는 옛날부터 양반 서민 가릴 것 없이 즐겨 먹던 과일있고, 심지어 양식 역할도 했다. 벼가 익기 전 쌀과 보리가 부족해 고심할때 여름철 참외가 쏟아져 나오면, 살림이 넉넉지 못했던 서민들은 한시름 놓으며 값싼 참외로 주린 배를 채우곤 했다. 조선 농민들은 여름이면 모두가 참외를 재배했는데 조선 초 『기재잡기』에는 세종이 용인, 여주, 이천, 광주 등으로 사냥을 갔을 때 길가 백성들이 청참외와 보리밥을 바치자 술과 음식으로 답례했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사절요』에는 낙향한 재상이 막걸리와 참외를 먹으며 청빈하게 보낸다는 보고를 받은 충렬왕이 쌀을 하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근대 잡지 《별건곤》을 보면 잊혀진 우리 토종 참외의 종류와 명산지가 실려있다. 잡이에 실린 참외 종류는 △알록달록한 개구리 참외 △겉이 노란 꾀꼬리참외 △색깔 검은 먹통참외 △속이 빨간 감참외 △모양 길쭉한 술통참외 △배꼽이 쑥 나온 배꼽참외 △유난히 둥그런 수박참외가 있다. 쥐똥참외도 있는데 야생종으로 맛이 없어 아이들이 먹지는 않고 장난감으로 가지고 놀았다고 한다. 참외 특산지를 품평해놓은 대목도 재미있다. 서울은 뚝섬 참외와 시흥 참외, 과천 참외가 유명하지만 뒷모습만 고운 서울 아가씨 같다고 평가했다. 보기에만 그럴싸할 뿐 맛은 별로였던 모양이다. 충청도에는 개구리참외로 유명한 성환 참외가 있는데 천안의 호두와 함께 충청남도 양대 특산물로 임금님께 진상하는 참외였다고 한다. 너무나 유명하고 귀한 참외여서 미운 사람은 성환 참외를 입도 대지 못하게 했다고 하며, 한낱 한시에 죽자고 맹세한 연인끼리도 성환 참외를 맛 볼 때는 둘이 먹다 누가 먼저 죽는지 알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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