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 / 2023. 4. 10. 13:18

터키의 항구 이름에서 따온, 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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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항구 이름에서 따온 체리이다. 체리 주빌레의 원조는 따로 있다, 로마 군인들이 만들어낸 체리나무 가로수길, 유럽에서 와인이 생활필수품이였던 이유에 대한 이야기이다.

체리 주빌레의 원조는 따로 있다

체리는 여러모로 앵두와 닮았다. 족보는 엄연히 다르고 생김새부터 맛까지 비슷하지만 그중에서도 결정적인 공통점이 한 가지 있다. 잔치에 쓰였던 과일이었다는 점이다. 그것도 보통 잔치가 아닌 아주 특별한 연회를 기념하고 장식하는 과일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체리 주빌레다. 익숙한 이름 때문에 대부분이 특정 브랜드의 체리맛 아이스크림을 먼저 떠올릴 텐데, 사실 이 아이스크림은 어느 특별한 연회에 나왔던 디저트 체리 주빌레를 차용해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오리지널 체리 주빌레는 어떤 음식이었을까? 체리는 과일 이름이고, 주빌레는 기념일이라는 뜻이다. 그것도 50주년, 100주년과 같은 특별한 날을 주빌레라고 한다. 체리 주빌레는 특별한 날을 위해 만든 체리 소스의 이름이었는데, 바로 1897년에 거행된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즉위 60주년 기념식, 즉 다이아몬드 주빌레를 위해 만든 것이다. 19세기말 유럽에서 이름을 날렸던 프랑스 셰프, 어귀스트 에스코피에가 개발해 여왕에게 헌정했다. 체리 주빌레를 만들기 위해서는 버터와 설탕을 녹인 후 오렌지 껍질과 즙으로 향을 더한 다음 브랜디를 붓는다. 그리고 불을 붙여 알코올은 날리고 브랜디 향만 남긴 후 체리를 넣고 졸여서 만든 소스다. 소스가 완성되면 보통은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체리 주빌레 소스를 끼얹어서, 아이스크림과 체리향 소스, 체리를 함께 즐기며 디저트로 먹는다. 특히 19세기 유럽에서 체리는 인기 있고 값비싼 과일이 아니었다. 사과, 자두와 함께 평범하고 흔했던 과일 중 하나였을 뿐이다. 어쩌면 외국의 진귀한 과일이 넘쳐나는 연화석상에서 평범하기 그지없는 체리로 만든 소스였기에 가치가 더 평가받아 그 이름과 레시피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로마 군인들이 만들어낸 체리나무 가로수길

영어 체리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 케라소스라고 한다. 케라소스는 마을 이름이다. 고대 소아시아 미노르 지방, 구글 지도에서 확인해 보면 지금의 터키 아나톨리아 고원 북동부의 흑해에 인접해 있는 항구 도시 기레순 부근에 있었던 마을이다. 고대에는 그곳에 체리 숲을 이룬 덕분에 체리가 많이 열렸고, 그래서 그 열매를 따다 이곳저곳에 팔았다고 한다.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체리의 주요 산지로 꼽혔던 곳이다. 약 2,000년 전, 케라소스라는 마을을 통해 체리가 그리스로 수출됐고 이어 로마로 전해지면서 마을 이름이 과일 이름이 된 것이다. 14세기 프랑스 왕 샤를 5세가 왕실 소유의 과수원에다 체리나무 1,000그루를 가져다 심으면서 프랑스에 퍼졌다. 16세기에 영국왕 헨리 8세가 노르망디에서 체리 열매를 맛본 후 체리나무를 여국으로 옮겨와 퍼트렸다고 하니까, 체리라는 열매 이름의 어원을 추적하는 과정은 곧 유럽 전체에 체리나무가 퍼지는 경로인 셈이다. 체리를 세상에 퍼트리는데 일차적으로 기여한 나라는 2,000년 전의 로마제국이다. 고대 체리의 원산지는 북반구 온대지방이다. 아주 춥지도 덥지도 않은 지역에서 두루 자랐던 서양 벚나무 열매였는데, 체리의 어원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서반구에서는 지금의 터키 일대에서 많이 자랐다. 처음 로마에 체리를 전파한 인물은 로마 장국 루쿨루스였다. 그는 기원전 75년부터 65년까지 로마가 지금의 터키 아나톨리아 지방과 아르메니아 일대에서 지중해 동쪽의 패권을 차지하려고 싸웠던 미트리다테스 전쟁에 참전했던 인물이다. 기원전 75년에 귀국하면서 현지의 특산 과일이었던 체리와 살구를 로마에 처음 전했다고 한다. 그는 엄청난 부자이면서 미식가였던 만큼 자신의 농장 곳곳에 체리나무를 심었다. 기원전 1세기 로마에서는 귀족들이 해외에서 구해온 진기한 동물이나 물고기, 과일과 채소를 키우면서 손님을 초대해 자랑하는 것이 관습이었다. 체리 역시 루쿨루스의 잔치에 초대받은 로마 귀족을 통해 로마사회에 퍼졌고, 곧이어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체리를 먹어본 로마인들은 시민과 군인 할 것 없이 곧 체리 사랑에 빠졌고, 로마제국은 군인들에게 간식으로 체리를 지급하기 시작했다. 체리가 로마군인의 보급품이었기 때문인지 혹은 로마인들이 체리를 좋아했기 때문인지 로마인들은 속주 곳곳에 체리를 전파했다. 지금의 영국인 브리타니아와 프랑스인 갈리아에도 체리를 전했는데 포도주를 음료수처럼 마셨던 로마인들이었으니까 포도가 재배되지 않은 지역에서는 포도주를 대신할 음료를 만들기 위해 체리를 심었던 것일 수도 있다.

유럽에서 와인이 생활필수품이었던 이유

지금은 체리를 다양한 용도로 쓴다. 예쁜 이미지 때문에 디저트를 꾸미는 가니쉬나 데코레이션 과일로 활용하기도 하고, 생과일로 먹으며 새콤 달콤 상큼한 맛을 즐기기도 한다. 혹은 체리 주빌레 소스나 체리 파이처럼 음식도 만든다. 그러면 옛날에는 체리를 어떻게 먹었을까? 옛날에는 체리 자체가 지금처럼 생과일로 인기가 높지는 않았다. 일단 로마가 소아시아에서 가져와 유럽에 퍼트린 체리, 그래서 중세에 이어 근대까지 유럽에서 자란 체리는 신맛이 강한 품종이 주류였다고 한다. 그러니 옛날 유럽에서 로마 군인들이 행군할 때 갈증을 해결하려고 먹기에는 적합했겠지만 지금처럼 과일의 달콤한 맛과 향을 즐기려고 먹기에는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디저트를 비롯한 음식 재료로 많이 활용했는데, 그중 하나가 체리 파이다. 으깬 체리를 채워 넣어 구운 파이인데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에게 만들어 바쳤다고 한다. 중세 유럽에서 체리는 상당 부분 술, 그중에서도 체리 와인을 만드는 원료로 쓰였다. 품종개량 전의 신 체리는 동양의 벚나무 열매, 버찌처럼 먹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신맛이 강해서 과일로 먹기는 어려웠고 음식 재료로 활용하기에도 부족했다. 그래서 산과 들에 주렁주렁 열린 체리를 따서 만든 것이 체리 와인과 키르쉬라는 체리 증류주다. 체리로 소주를 만든다는 것이 얼핏 특이하지만 사실 키르쉬에는 그 이상의 역사적 의미가 있다. 키르쉬라는 증류주가 생겨나기 전, 독일과 오스트리아, 스위스 그리고 라인강 북부 유역 사람들은 주로 체리 와인을 마셨다. 로마시대 이후 그리고 현대 이전 유럽에서 와인은 기호품으로 마시는 술이 아니었다. 석회성분이 많아 수질이 나쁜 유럽에서 물과 섞어 유해한 성분을 걸러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필수 생활음료였다. 이런 포도주를 만드는 원료인 포도 재배의 북방 한계선이 로마시대에는 갈리아 지방, 즉 지금의 프랑스까지였고 라인강 계곡 남부까지였다. 로마시대에 맥주는 로마인의 입장에서 야만인들이 마시는 음료였기 때문에 그다지 선호되지 않았고 그래서 게르마니아 지역에 주둔한 로마군인과 정착민, 그리고 로마문화를 동경했던 원주민들은 포도 대신에 비교적 추운 지역에서도 잘 자라는 체리를 이용해 음료용 와인을 만들었다. 말해 체리 와인은 포도 와인을 만들 수 없는 지역에서 포도주를 대신해 만든 술이었을 것이고, 그 흔적으로 남아있는 것이 지금의 키르쉬라는 지역 특산 증류주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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