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에 담긴 전파 경로를 알 수 있는 바나나 이야기이다. 노예를 위한 값싼 식량, 품종개량과 거대 기업의 만남으로 태어난 바나나 공화국, 제사상에 바나나를 올렸다는 이야기를 알아보자.
노예를 위한 값싼 식량
여러 어원설이 있지만 일단 바나나가 손가락을 뜻한다는 주장이 있다. 아랍어로 손가락을 뜻하는 바난이 변해 바나나가 됐다는 것이다. 인터넷에 많이 떠도는 어원설이다. 얼핏 그럴듯하게 들리기는 하지만 정설은 아닌 듯싶다. 일단 아랍어 사전에는 손가락을 뜻하는 바난이라는 단어가 없다. 다수가 주장하는 바나나 어원은 아프리카이다. 아프리카 서부 세네갈과 잠비아 원주민의 언어인 월로프어 중 '바나아나'란 단어가 포르투갈 상인을 통해 아메리카에 전해지면서 바나나가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시 '바나아나'가 무슨 뜻인지는 전해지지 않으니, 바나나의 어원은 이래저래 애매하다. 바나나의 원산지의 동남아다. 그런데 왜 엉뚱하게 서아프카 혹은 아랍의 언어를 어원으로 ㅜ정하는 것일까? 이는 바나나 전파 역사와 관련 있다. 동남아에서 자생하던 바나나가 먼 옛날 인도와 서남아에 퍼졌고 페르시아를 거쳐 고대 그리스, 로마제국으로 전해졌다. 그러다 로마제국이 망한 후 7세기 무렵, 바나나가 다시 아랍세계에 퍼졌고 아랍 상인을 통해 아프리카에 전해졌다. 지금도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는 바나나를 쌀과 옥수수처럼 주식으로 먹는데 처음 전해졌을 때도 과일이 아닌 식량의 목적이었다. 15세기 포르투갈 무역상이 아프리카 열대림의 바나나를 신대륙으로 가져와 중남미 카리브해 연안에 심었다. 이 바나나가 미국으로, 유럽으로 전해지면서 '바나나'라는 영어 이름이 생겼다. 어원으로 본 전파 경로다. 바나나의 라틴어 학명은 뮤사 파라디시아카다. 식물 분류학의 체계를 세운 18세기 스웨덴 학자 칼 린네가 지은 이름이다. 뮤사는 바나나 속의 식물을 일컫는 이름으로 역시 린네가 만든 단어다. 초대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주치의를 지냈던 안토니우스 뮤사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하는데, 그는 로마제국 최초로 이국의 열대작물을 재배한 인물이다. 바나나를 그리스에 처음 전한 사람은 알렉산더 대왕이다. 이런 그가 바나나를 먹지 못하게 했고 그 영향을 받아서인지 로마제국에 전해진 바나나 역시 인기 과일은 아니었다. 그러고 보면 고대 그리스, 로마인들은 바나나를 거의 먹지 않았고, 아프리카와 중남미에서는 노예와 노동자의 식량이었으니, 그 옛날 바나나의 위상이 어땠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품종개량과 거대 기업의 만남으로 태어난 바나나 공화국
바나나가 멀리 퍼진 것은 품종개략 덕분이었다. 씨가 없으면서 과육은 부드럽고 맛은 향긋한 바나나가 나오면서부터다. 이런 바나나가 세상에 처음 선보인 것은 1835년 전후로 '그로 미셀'이라는 바나나 품종이 개발된 이후다. 씨가 없어 먹기에 편한 데다 맛도 좋고 게다가 껍질이 두꺼워 멀리 운송해도 바나나가 쉽게 상하지 않았기에 미국과 유럽에까지 수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50년대 파나마병이라는 치명적인 빌병에 노출돼 거의 멸종되다시피 하면서 재배가 중단됐다. 그러자 곧이어 다른 3배체 바나나가 뒤를 이었다. 지금 우리가 먹는 바나나인 캐번디시 품종이다. 이렇게 바나나가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된 데는 3 배체 바나나의 등장이 계기가 됐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15세기 아프리카에서 카리브해로 바나나 종자를 가져와 심은 이후, 그리고 19세기 전반 씨 없는 바나나 재배가 시작된 이후, 중남미에서는 바나나가 무성하게 번식한다. 하지만 미국에서 바나나는 19세기 중반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열대 과일이었다. 바나나가 미국 대중에게 처음 알려진 것은 1876년 전후다.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건국 100주년 박람회에서 중남미 열대 과일로 소개됐다고 한다. 이때 바나나는 관세가 붙어 값비싼 수입 과일이었다. 바나나 1개 값이 당시 근로자의 1시간 임금에 해당됐기에 웬만한 부자 아니면 사 먹기 힘들었다. 1870년 보스턴의 한 수입상은 대규모 바나나 농장을 건설했고 미국에 바나나가 대량으로 들어오는 계기가 됐다. 또한 1890년 ㄴ욕 출신의 케이드라는 사업가가 중미 코스타리카의 철도 건설 사업에 진출한 것을 계기로, 바나나가 싼값으로 미국에 공급되기 시작했다. 덕분에 미국에 바나나가 저렴한 가격에 공급되면서 붐이 불었고, 사치스러운 수입 과일에서 누구나 먹을 수 있는 대중 과일이 됐다. 케이드가 설립한 회사는 1899년 재정 곤란에 빠져있던 보스턴 과일 회사를 합병해 유나이티드 푸르츠라는 회사로 거듭나고, 미구 바나나 시장의 75%를 점유할 정도의 공룡 독점 기업이 됐다. 과테말라에서 바나나 경작지의 70%는 유나이티드 푸르츠의 소유였고 외국 자본 소유의 토지를 회수해 경작지가 없는 농민에게 나누어 주겠다는 진보 댙오령은 쿠데타 세력을 지원해 축출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독재자는 외국 자본과 결탁한 하수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토지 소유주에게 세금을 올리려는 정책을 펼치자 세금을 낮추기 위해 에이커당 75달러의 토지를 3달러로 계산하는 등 멋대로 정책을 주물렀다. 그리고 그 배후에 유나이티드 푸르츠 들이 있었다. 우리가 싸고 맛있는 바나나를 먹게 된 이면에는 바나나 공화국 같은 암울한 역사가 숨어있는 것이다.
제사상에 바나나를 올렸다
조선의 양반들도 바나나를 먹었던 것으로 보인다. 먹었는지를 확신할 수는 없지만 존재 자체는 알고 있었고 심지어 제사상에 올렸다느 기록도 있다. 문헌처럼 실제 바나나를 제물로 올렸는지를 확실치 않다. 바나나가 흔했을 중국의 글을 인용해 제문을 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바나나를 제물로 바쳤다는 글은 당나라 시인 한유가 동시대 시인 유종원을 추모하며 지은 글에 나온다. "여지와 초황을 안주며 채소 등의 음식과 섞어 사당에 올리노라"라는 구절이다. 저작권이 없었던 시절이라 옛날 사람들은 남의 글을 멋대로 인용하는 것이 다반사였으니, 조선의 제문 역시 실제 바나나를 제물로 준비한 것이 아라 글로만 인용한 것일 수 있다. 특히 바나나는 남국에서 가져오는 상하기 쉬운 과일인 만큼 조선에서 바나나를 구했다고 해도 때맞춰 제물로 쓸 수 있을 정도였을지는 의문이다. 실제로 바나나의 원산지는 앞서 말했듯 동남아다. 그런 만큼 일찍부터 중국 문헌에 보인다. 4세기 문헌인 '남방초목상'과 '화양국지'에 남국에서 자라는 파초에 대한 기록이 보이는데 그중 일부는 바나나로 추정된다. 6세기 '제민요술'에는 바나나가 확실한 노란 파초열매가 나온다. 맛있는 파초로 길이는 6~7촌이고 껍질을 벗기면 황백색 과육이 나오는데 맛과 달기가 포도와 비슷하다고 했다. 이렇게 중국에 진작 알려진 바나나였으니 조선에서도 당연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지금의 오키나와인 유구국 혹은 필리핀, 타이완 등을 통해 실물이 전해졌을 가능성도 높다.
바나나는 인간이 만든 과일이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바나나는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수천 년 동안 인간이 선택적으로 교배하여 만들어진 과일이다. 원래 바나나는 씨가 크고 단단한 야생 바나나에서 유래되었는데, 수천 년 전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사람들이 더 부드럽고 달콤한 품종을 선택하여 계속 재배한 결과 현재의 씨 없는 바나나가 탄생했다. 야생 바나나는 크고 단단한 씨앗이 과육 속에 박혀 있어 먹기가 불편하지만, 현재 우리가 먹는 바나나는 이런 씨앗이 퇴화하여 씨가 거의 보이지 않는 상태이다. 바나나는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해 자연적으로 씨가 없는 형태로 변한 캐체를 사람들이 선택적으로 번식시키며 발전한 과일이며, 스스로 씨를 퍼트릴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직접 줄기에서 잘라내어 번식시키는 방법으로 재배 가능하다. 다시 말해, 바나나는 자연적인 진화가 아닌 인간이 개입하여 만들어낸 완전히 인공적인 과일이며, 우리가 먹는 바나나 모두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복제된 과일이라고 볼 수 있다.
바나나는 나무에서 자라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바나나가 나무에서 자라는 열매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바나나는 풀에서 자라는 과일이다. 바나나를 생산하는 식물은 '바나나 트리'라고 불리지만, 실제로 나무가 아닌 세계에서 가장 큰 초본식물 중 하나이다. 바나나 식물의 줄기는 나무처럼 보이지만 목질이 아닌 겹겹이 쌓인 잎줄기로 이루어져 있어 식물학적으로 풀의 일종으로 분류된다. 이 거대한 풀은 평균 2~8M까지 자라며, 심지어 10M 이상 자라는 경우도 있다. 또한, 바나나 나무는 한번 열매를 맺으면 그 줄기가 다시 열매를 맺을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줄기가 자라나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바나나 농장에서는 하나의 바나나 식물이 열매를 맺은 후, 그 줄기를 잘라내고 새로운 순이 자라도록 관리하는 방법으로 재배한다. 이렇게 보면, 바나나는 단순한 과일이 아닌 엄청난 성장력을 가진 거대한 풀에서 자라는 과일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