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의 왕
파인애플을 처음 본 유럽인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콜럼버스가 2차 항해에서 돌아와 스페인 이사벨라 여왕과 남편인 아라곤 왕 페르디난도 2세에게 파인애플을 바쳤을 때, 페르디난도 2세는 파인애플을 맛본 후 겉모습과 빛깔은 솔방울처럼 생겼고 껍질은 비늘 같은 것으로 뒤덮여있으며 단단하기는 멜론보다 더하지만 맛과 향은 다른 모든 과일을 압도한다며 감탄했다고 한다. 콜럼버스가 살았던 15세기 말은 과일의 당도가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낮을 때였으니, 잘 익은 파인애플의 향과 맛, 달콤함에 압도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멀고 먼 신대륙에서 가져와 했기에 구하기 조차 쉽지 않은 과일이었으니, 사람들은 파인애플에 대한 환상까지 품었다. 스페인의 아라곤 왕 페르디난도 2세가 파나마에 파견했던 특사 곤잘레스 페르난데스는 파인애플을 보고 지금껏 봐온 과일 중에서 가장 아름다울 뿐 아니라 그토록 절묘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의 과일은 이 세상에서 더 이상 없을 것이라며 감탄했다. 17세기 도미니크 수사이면서 식물학자였던 두 테르트는 파인애플을 보고 과일의 왕이라며 축복을 내렸을 정도였다. 17세기 초반의 프랑스 의사 피에르 퐁메는 파인애플을 과일의 왕이라고 부르는 것은 지구상의 모든 열매 중에서 가장 뛰어난 과일이기 때문이며, 그렇기에 신이 과일의 왕이라는 뜻으로 파인애플 머리 위에 왕관을 씌워준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파인애플은 왕권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찰스 2세가 왕권의 상징으로 삼았던 데는 단순히 파인애플을 좋아하는 것 이상의 다른 배경도 있었다. 프랑스는 카리브해 서인도제도에 있는 세인트 키트라는 섬의 지배권을 놓고 서로 다투었다. 그렇기에 찰스 2세가 이 섬에서 가져온 파인애플을 디너파티용 과일 더미 꼭대기에 올려놓으며 그 섬의 지배권 확보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는 것이다.
온실재배 열풍의 선두주자
옛날 유럽의 왕족과 귀족이 파인애플을 천상의 과일로 여긴 데는 희소성의 이유가 크다. 파인애플은 열대과일이기에 유럽 어느 곳에서도 재배를 하지 못했다. 별 수 없이 온실재배를 해야만 했는데 파인애플을 키울 수 있는 열대의 조건을 갖춘 온실을 만들기란 쉽지 않았다. 최초의 온실재배는 1687년에야 이뤄졌다. 네덜란드의 아그네스 블록이라는 여성이 처음으로 재배에 성공했는데 아그네스 블록은 비단 무역상인의 미망인으로 어마어마한 재력의 소유자였다. 그런 만큼 다양한 예술품과 열대식물을 모으는 수집가로도 유명해서 집안에 식물원을 만들었고 그곳에 파인애플을 심어 키웠다. 하지만 아그네스 블록이 정원 식물원에서 키운 파인애플은 본격적인 온실재배로는 평가받지 못했다. 그렇다고 아그네스 블록의 공로를 폄하할 것만은 아니라고 한다. 열대식물을 죽이지 않고 키울 수 있는 온실을 짓는 구조와 온도를 유지하는 노하우를 처음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약 20년이 지난 후 역시 네덜란드 사람인 피터르 드 라 코트가 처음으로 본격적인 파인애플 온실재배에 성공했다. 지금도 대학도시로 유명한 네덜란드의 라이덴에 열대작물 재배에 적합한 온실 식물원을 짓고 파인애플을 키웠는데, 1713년부터 해마다 수백 개씩의 파인애플이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코트의 파인애플 재배법은 당시 유럽 전역에서 주목을 받았다. 그가 건설한 식물원은 내부는 스토브 등을 이용해 토양의 온도와 습기를 열대 지방에 가깝게 유지하고 외부에서 뜨거운 연기를 내부로 순환시켜 열대 지방의 온도와 날씨를 유지하는 방식이었다. 코트는 파인애플 재배에 맞는 열대 식물원 건설 노하우를 독점하지 않았다. 사망하기 두 해 전인 1737년에는 파인애플 재배법을 책으로 발간하기도 했고 식물원을 방문한 유럽 각국 왕실과 귀족들에게 재배법을 전수하기도 했다. 덕분에 파인애플 재배 식물원이 유럽 각지로 퍼져나갔다. 파인애플이 대중적인 과일이 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였다. 가장 큰 공로자로는 파인애플 통조림으로 유명한 회사를 설립한 제임스 돌을 꼽는다. 그는 1901년 돌 파인애플 컴퍼니를 설립해 파인애플을 보급했다. 파인애플이 대중화 될 수 있었던 두 번째 요인은 운송수단의 발달이다. 범선의 시대가 가고 증기선의 시대가 오면서 그리고 여객선 화물선이 등장하면서 파인애플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한다. 드디어 부자들만의 과일에서 대중의 과일로 바뀌게 된 것이다.
파인애플 이름에 담긴 의미
파인애플이라는 이름은 사실 솔방울이라는 뜻이다. 파인은 소나무, 애플은 사과라는 뜻이니까 우리말로 옮기면 솔방울이다. 하지만, 여기서 애플은 사과라는 뜻보다는 열매라는 의미로 풀이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 옛날 영어권에서는 나아가 유럽 대수의 언어에서는 애플에 사과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과일 또는 열매라는 뜻이 포함돼있다. 유럽에서는 고대로부터 사과가 가장 흔했던 과일이었기 때문에 '사과=애플'이라는 의미로 굳어지게 됐다고 한다. 파인애플의 모양새가 얼핏 커다란 솔방울처럼 생겼기에 인디언의 솔방울이라고 부른 것일 수도 있고 혹은 원주민이 부르는 이름이 유럽인에게는 발음이 어려웠기 때문에 그냥 인디언의 솔방울이라고 했을 수도 있다. 참고로 파인애플의 한자 이름은 봉황이 먹는 배라는 뜻의 '봉리' 혹은 페르시아의 쑥이라는 뜻의 '파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