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원 그리고 마피아까지의 레몬 이야기를 담았다. 괴혈병 치료제가 만들어낸 최강의 함대, 레몬 때문에 마피아가 출현했다는 이야기에 대해 알아보자.
괴혈병 치료제가 만들어낸 최강의 함대
19세기 초 유럽인들은 영국인, 특히 영국 해군 수병이나 선원을 경멸의 의미를 담아 '라이미'라고 불렀다. '라임주스 마시는 놈'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영국 뱃사람들은 라임이나 레몬즙을 짜서 만든 주스를 열심히 마셨다. 시어 빠진 레몬주스나 라임즙을 오만가지 인상을 찌푸려가며 쭉쭉 빨아먹었던 것인데, 그렇지 않아도 햇볕에 검게 그을린 데다 오랜 항해로 몰골이 꾀쬐쬐한 뱃사람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 눈에 곱게 보일 리 만무했다. 그래서 경멸하는 말투로 영국 선원과 수병을 라이미라고 불렀고 나중에는 아예 영국 사람을 조롱하는 별명이 된 것이다. 이렇게 영국에서 장기간 배를 타는 선원들은 의무적으로 레몬이나 라임을 먹어야 했다. 1740년 영국과 스페인 사이에 전쟁이 발발했다. 그리고 조지 앤슨 영국 해군제독이 이끄는 여덟 척의 함대가 아시아 태평양 항해에 나섰다. 이 지역에 있는 스페인 식민지를 탈취하기 위한 세계일주 항해였다. 모두 1,955명의 병력을 태우고 출발했는데 4년 동안의 온갖 고생 끝에 중국을 거쳐 영국으로 돌아왔을 때의 인원은 고작 634명뿐이었다. 열병과 이질, 그리고 대부분이 괴혈병 때문에 사망했다고 한다. 괴혈병은 비타민C 결핍으로 생기는 병이다. 초기에는 잇몸 출혈에서 시작해 서서히 피부가 괴사 하며 마침내 죽음에까지 이르게 된다. 제임스 린드는 먼바다로 항해를 떠난 후 두 달 만에 괴혈병이 발생하자 12명의 환자를 2명씩 6개 그룹으로 나누어 서로 다르게 처방했다. 식사는 똑같이 지급했고, 추가 지급분으로 여러 가지를 넣어주었다. 그 결과 레몬과 라임을 먹은 그룹에서 뚜렷한 치료 효과가 나타나면서, 괴혈병에는 감귤류 과일이 특효라는 사실을 밝혀낼 수 있었다. 이후에도 계속된 꾸준한 연구 끝에 치료 효과가 입증되면서, 1795년 괴혈병 방지를 위해 공식적으로 레몬주스가 영국 해군 식단에 추가되었다. 다만 레몬 역시 다른 채소와 마찬가지로 먼바다 항해에 나서면 장기간 보관이 어렵기 때문에 레몬즙을 짜서 용기에 넣고 그 위에 충분한 양의 기름을 쏟아부어 저장했다고 한다.
레몬 때문에 마피아가 출현했다?
영국 해군을 비롯해 유럽 여러 나라의 선박회사에서 앞다투어 레몬을 사들이다 보니, 당연히 레몬 특수가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영국 해군에서만 한 해 구입하는 레몬주스가 160만 갤런을 넘었을 정도였다. 영국은 해군과 선박에 공급할 레몬을 주로 이탈리아와 터키에서 수입했는데, 이렇게 레몬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19세기 이탈리아가 특히나 레몬 특수를 누렸다. 고수익 과일이었던 데다 수요 폭발로 시칠리아 재배 농가들은 큰돈을 벌었지만 그에 비례해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레몬 도둑이 극성을 부렸지만 쉽게 막을 수도 없었고, 그러다 보니 치안이 극도로 불안해졌다. 통일전쟁의 혼란기에 정치, 경제, 사회 시스템이 무너진 데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같은 레몬 특수까지 생겼으니 도둑이 들끓고 범죄가 만연하는 것은 당연했다. 더군다나 레몬 농사는 관개시설 정비 등 막대한 자본 투자가 필요했기에 레몬 농장주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조직이 필요했다. 공권력에 의한 치안 유지가 어려웠던 시칠리아에서 일부 전직 가벨로티들이 세력화되면서 범죄조직이 됐고, 레몬 농장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돈을 상납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가벨로티 조직이 마피아의 원조가 됐다는 것인데, 실제로 시칠리아에서 마피아라는 용어가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으로 그 어원은 어깨에 힘을 주고 으스대는 사람이라는 뜻의 마피오소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레몬이 괴혈병 치료에 한몫을 하고 마피아 탄생의 계기가 됐다는 사실은 뜻밖이지만, 따지고 보면 레몬은 일상생활에서 자주 활용된다. 레몬주스나 레모네이드의 형태로 혹은 생선회를 먹을 때 즙을 뿌려서 또는 샐러드에, 요리 재료로 등등 알게 모르게 레몬을 먹는 경우가 많다. 레몬과 오렌지는 태생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을까? 레몬과 오렌지는 서로 다른 과일인 것 같지만 유전적으로는 비슷한 부분이 많다. 이들 열매가 동양에서 서양으로 전해지는 과정이나 시기도 비슷비슷한데, 레몬의 유럽 전래는 여러 설이 있지만 대략 쓴 오렌지와 비슷하게 10세기 무렵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처음 전해진 레몬은 쓴 오렌지와 용도가 비슷했다. 주로 향수나 의료용으로 쓰였는데 장미수처럼 레몬수 역시 미용 목적 또는 의료용으로 사용됐고, 나무는 부자들이 정원수로 심었다. 그러던 것이 괴혈병 치료제의 특효약으로 자리 잡으면서, 그 위상을 넓혀 역사를 뒤흔든 계기를 마련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