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백성을 살린 감에 대한 이야기이다. 감이 알고 보니 구황 음식이었다는 이야기, 감으로 왕을 죽였다는 이야기, 고향 가는 것을 잊게 만들었다는 열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알고 보니 구황 음식
우리 전래동화를 보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곶감이다. 그렇게 울어대면 호랑이가 잡아간다는 말에도 울음을 그치지 않던 아이가 곶감 준다는 말에 울음을 뚝 그친다. 그 모습을 본 호랑이가 곶감이 자신보다 더 무서운가 보다며 줄행랑을 놓았다는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하다. 아이는 왜 곶감 준다는 말에 울음을 그쳤을까? 현대의 해석으론 곶감이 그만큼 맛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호랑이가 잡아간다는 위협으로도 아이의 울음을 달랠 수 없었다면, 진짜 원인은 배고픔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식량은 부족하고 그렇기에 밥 대신 곶감 준다는 한마디에 단박에 울음을 그쳤던 것일 수도 있다. 감은 고대로부터 배고픔을 해결해주는 과일이었다. 일종의 구황 음식 역할을 했다. 중국 일부 지역에서는 겨울이 시작되는 절기로,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 무렵에 감을 먹는 풍속이 있다. 이날 감을 먹으면 겨울철 추위를 막고 배불리 지낼 수 있다고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설날인 춘절에 감을 먹기도 한다. 새해 감을 먹으면 일 년 내내 배고프지 않고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를 같은 발음의 글자로 의미를 부여하는 중국 특유의 해음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옛날부터 감에는 일곱 가지 덕이 있으니 이른바 칠덕이 그것이다. 첫째는 수명이 길다는 것이고, 둘째 그늘이 짙으며, 셋째 새가 둥지를 틀지 않고, 넷째 벌레가 생기지 않으며, 다섯째 가을 단풍이 아름답고, 여섯째 열매가 맛있으며, 일곱째 낙엽이 거름이 된다는 것이다. 감나무에는 또 오상의 덕이 있다고도 했다. 잎에 글씨를 쓸 수 있기에 문이 있고 나무가 단단해 무기를 만들 수 있어 무, 과일의 겉과 속이 동일하게 붉으니 충, 치아가 부실한 노인도 먹을 수 있어 효, 서리가 내리는 늦가을까지 열매가 열리니 절개의 상징으로 삼기도 했다. 감나무 하나를 놓고 별별 의미를 다 부여해가며 예찬을 펼친 걸 보면, 옛사람들에게 감이 그만큼 유용한 과일, 양식 대신 먹을 수 있는 귀한 식량과 같은 열매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감으로 왕을 죽였다?
맛도 좋고 몸에도 좋다는 감이지만 호사다마라고 좋은 일에도 마가 낄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 옛사람들은 감을 먹을 때 함께 먹으면 좋지 않은 음식이 있다고 경고했다. 홍시는 술과 함께 먹으면 안 되고 또 감과 배는 게와 함께 먹으면 좋지 않으니 물성이 서로 상반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심지어 게와 감을 같이 먹으면 복통을 일으켜 사망할지도 모른다고 믿었다. 소문에 의하면 조선 제20대 임금인 경종이 그렇게 사망했다고 한다. 게장을 먹고 체한 것을 경종이 사망한 원인으로 본 것인데, 세제였던 이복동생 영조가 형인 경종에게 게장을 보냈다는 이야기가 돌면서, 영조는 평생 경종을 독살했다는 소문을 안고 가야만 했다. 어쨌든 경종의 승하로 결국 영조가 왕이 됐지만 일부 소론 세력과 급진 남인이 손을 잡고 반발하자 영조가 대대적인 숙청을 단행했다. 이때 숙청의 빌미가 된 것 역시 독살설이다. 소론 인사인 이천해가 경종의 승하 이유로 동궁전에서 보낸 게장과 감을 먹고 임금이 죽었다는 소문을 퍼트려 마치 영조가 형을 독살할 것처럼 모략을 했다며 역모 죄로 몰아 소론 일파를 제거했다. 어쨌거나 미국에서는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을 토마토를 먹여 독살하려 했다는 음모론이 있었고 조선에서는 감과 게장으로 경종이 독살됐다는 소문이 돌았으니, 애꿎은 과일에다 별별 음해를 한 모양이다.
고향 가는 걸 잊게 만드는 열매
감 관련 속설이 많다는 것은 뒤집어보면 그만큼 익숙한 과일이었다는 소리다. 사실 감은 가을철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과일이다. 추석 그림만 봐도 초가집 지붕 위로 둥근 보름달이 떠있고 담장 너머에는 감이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가 서있다. 전형적인 한가위 이미지이다. 그만큼 감은 우리에게 친숙한 과일이지만, 한편으론 동북아시아 전체적으로 익숙한 과일이기도 하다. 실제로 감은 동북아시아에서 유럽으로 퍼진 과일이다.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유럽 대부분 국가에서는 감을 모두 그 나라 발음으로 카키라고 부른다. 카키는 일본말로 감이라는 뜻이다. 감이 일본을 통해 유럽에 퍼졌기 때문이다. 일본을 오가던 서양의 무역상과 선교사가 일본에서 동양 과일인 감을 처음 보고 그 종자를 가져다 심었다. 대부분의 유럽어에서 감을 일본말 그대로 카키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영어로 감은 퍼시몬이다. 영어에서 감을 카키 대신 퍼시몬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1870년 일본에서 가져온 아시아 감이 퍼지기 전에 미국과 영국에는 이미 다른 종류의 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퍼시몬의 어원은 북아메리카 동부지역에 살았던 원주민 인디언들이 쓰던 언어인 알곤킨어에서 비롯됐다. 인디언들은 북미 토종 감나무의 열매를 말려서 식량으로, 또 간식으로 먹었다. 일종의 곶감을 만들어 먹었던 셈이다. 이들은 이 열매를 푸차민이라고 불렀다. 참고로 북미 원주민이 먹었다는 토종 감은 우리가 먹는 아시아 감과는 아예 종이 다르다. 감나무 속에 속하는 나무는 약 500여 종이 있지만 그중 열매를 식용으로 먹는 종은 몇 개가 안되는데, 앞서 언급한 아시아 감과 북미 토종 감, 그리고 또 하나가 고욤이다. 감나무의 라틴어 학명인 디오스피로스도 고욤나무에서 비롯됐다. 그런데 이 디오스피로스라는 이름에 엄청난 의미가 있다. 이 이름은 디오스와 피로스가 합쳐진 단어로 디오스는 고대 그리스어로 제우스, 그러니까 신이라는 뜻이다. 피로스는 곡식이라는 의미니까 확대하면 음식이라는 뜻이 된다. 즉 제우스의 곡식, 신의 음식이라는 의미다. 신이 먹는 음식, 그렇기에 사람들이 먹으면 가족과 집이 있는 고향을 잊을 만큼 황홀경을 느낀다는 열매가 바로 감나무 열매의 일종인 고욤이다. 라틴어 학명은 18세기 이후에 만들어진 명칭이지만 고욤에 대해 유럽인들이 품고 있는 이런 원형적 이미지가 반영되어 있기에 신의 음식, 고향을 잊게 만드는 로터스 열매라는 이름을 붙였을 것으로 보인다.
감은 일본에서 '신이 내린 과일'로 불린다
감은 한국과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과일이며, 특별한 의미를 지닌 '신이 내린 과일'로 여겨졌다. 일본에서는 감을 '카키'라고 부르며, 가을이 되면 일본 전역에서 감을 재배하고 다양한 감 요리를 즐긴다. 특히 일본에서는 감이 풍요와 장수를 상징하는 과일로 여겨져, 신사에서 감을 신에게 바치는 전통이 있으며, 새해 명절이나 가을 축제 때 감을 먹으면 행운이 찾아온다고 믿는다. 일본의 대표적인 감 품종의 하나인 '후유 감'은 '풍요로운 삶'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감 품종이다. 또한, 일본에서는 감을 말려서 곶감으로 만들어 먹는 문화가 있고, 곶감을 천장에 매달아 말리면서 '이 집에 복이 깃들기를 ' 기원하는 전통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감은 일본에서 중요한 행사나 축제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특별한 과일로 자리 잡았다.
감을 먹고 우유를 마시면 안 된다는 속설이 있다
감을 먹고 우유를 마시면 배탈이 난다는 속설이 있는데, 이것은 감의 '타닌' 성분과 우유의 '단백질'이 만나 응고되면서 소화불량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감에 포함된 타닌 성분은 단백질과 결합하면 단단한 덩어리를 형성할 수 있고, 이것은 위에서 소화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 실제로 위산이 적거나 소화기능이 약한 사람들은 감과 우유를 함께 섭취했을 때 소화가 잘되지 않아 속이 불편해질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건강한 성인의 경우, 적당량의 감과 우유를 함께 먹어도 큰 문제는 되지 않으며, 단순한 속설에 불과할 수 있다. 다만, 감을 과하게 섭취하면 위에서 응고된 덩어리가 위석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기에, 한번에 너무 많은 감을 먹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감을 먹을 때는 신중하게 섭취하는 것이 좋으며, 적절한 양을 먹으면 건강에 유익한 과일이라는 점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