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릉도원의 과일이었던 복숭아에 대한 이야기이다. 동서양을 넘나드는 신들의 과일이었던 이야기, 무릉도원과 도원결의에 대한 이야기, 나쁜 기운을 쫓는다는 이야기, 복숭아가 지닌 다양한 상징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동서양을 넘나드는 신들의 과일
우리말 복숭아는 무슨 뜻일까? 그 어원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민간 어원조차 제대로 없다. 그저 15세기 후반, 조선 성종 때 간행된 『두시언해』에 복숭아라는 이름이 보이니 꽤 먼 옛날부터 한글 이름을 사용했을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중국의 인터넷 글자 해석도 다르지만 비슷하다. 동북아시아에서 봄이 오면 제일 먼저 피는 꽃이 복숭아다. 그렇기에 복사꽃이 얼마나 많이 피는지, 어떻게 피는지에 따라 그해 과일이 얼마나 많이 열릴지를 점칠 수 있다. 복숭아를 통해 과일의 풍년 여부를 점칠 수 있기에, 미리 알려준다는 조짐 '조'자를 써서 복숭아 '도'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확대 해석하면 복숭아는 하늘의 뜻을 알려주는 과일이라는 뜻인데, 그만큼 복숭아의 도에는 복숭아를 신비한 과일로 여겼던 고대인들의 생각이 담겨있다. 서양에서도 복숭아는 특별한 과일이었다. 복숭아는 영어로 피치다. 피치의 어원은 페르시아 사과, 즉 페르시아 열매라는 뜻이다. 복숭아가 고대 페르시아로부터 전해졌다고 생각했기에 생긴 이름이다. 원래 복숭아는 동양이 원산지였다. 동북아 일대에서 자라는 나무의 열매였는데, 머나먼 옛날 실크로드를 따라 지금의 이란 일대인 고대 페르시아에 전해졌다. 그러다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대황이 동방원정을 왔을 때 페르시아에서 낯선 복숭아나무를 발견하고 그리스에 옮겨다 심었고, 이후 로마인들이 제국에 복숭아를 널리 퍼트렸다. 17~18세기 들어와서야 영국과 프랑스 등에 본격적으로 퍼졌다. 영어로 천도복숭아는 넥타린이다. 어원이 과일즙이라는 뜻의 넥타에서 비롯됐다. 넥타라고 하면 지금은 그냥 과일주스 형태의 음료수를 의미하지만, 옛 그리스 신화에서는 신들이 마시는 음료를 의미했다. 그러니까 영어 넥타린은 신들이 마시는 과즙 음료처럼 향긋하고 맛있는 복숭아라는 뜻에서 생겨난 말이다.
무릉도원과 도원결의
복숭아가 평범한 과일이 아닌 하늘의 열매라는 사실은 동양의 신화 및 문학작품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먼저 서양의 에덴동산에 버금가는 동야의 낙원인 '무릉도원'이 그것이다. 무릉도원은 이상향인 유토피아를 의미하지만 글자 뜻 그대로 풀이하면 무릉이라는 곳에 있는 복숭아 마을이다. 무릉도원은 전란이 끊이지 않았던 삼국시대가 끝난 후인 4세기 동진 때의 시인 도원명이 쓴 『도와원기』에 나오는 이상향이다.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가 모티브가 됐다. 다툼이 없어 평화로우며 그래서 근심 걱정이 없어 평안한 곳은 곧 꿈속 같은 세상이며, 동양적으로 말하자면 신선들이 사는 세상이다. 복숭아는 바로 그런 ㄱ소에서 무성하게 볼 수 있는 나무의 열매였다. 신선들이 사는 곳의 과일이기에 사람들은 그 과일을 먹으며 천년만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고전소설 『서유기』속의 복숭아 역시 그런 과일이다. 신선세계의 여신인 서왕모가 사는 곤륜산에는 복숭아나무가 있는데, 이 복숭아를 먹으면 3,000년을 산다고 했다. 잘 알려져 있듯 손오공은 이 복숭아를 훔쳐 먹고 벌을 받았다. 삼천갑자 동방삭의 장수 비결 역시 서왕모의 복숭아를 훔쳐 먹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아는 소설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도원결의'도 하늘과 관련 있다. 유비, 관우, 장비는 복숭아밭에서 하늘에 맹세하고 의형제를 맺었다. 이것이 첫 장에 나오는 도원결의다. 도원결의의 무대가 된 것은 탁군이다. 지금의 북경 부근인데 때는 봄날이고 주변은 온통 복숭아밭이었기에 그곳에서 의형제를 맺는 의식을 가진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달리 보면 그만큼 복숭아가 특별한 상징성을 지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성이 서로 다른 세 사람이 형제의 의를 맺었다는 결의가 핵심인데, 후세 사람들은 그에 못지않게 복숭아밭이라는 장소를 강조한다. 그래서 도원결의이다. 형제가 됐음을 천지신명께 제사를 지내 알리며 하늘에 맹세하는 의식이기에 하늘의 열매인 복숭아밭에서 결의를 맺어야 했다는 해석이다.
나쁜 기운을 쫓는다
복숭아가 천상 세계의 과일이라는 무의식의 원형은 옛날 신화나 문학작품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현대에도 실존하는 현재진행형이다. 옛날에는 복숭아가 장수의 상징이었다. 중국에서는 지금도 아이 생일이 되면 복숭아 모양으로 만든 만두나 과자를 선물한다. 예전 어른들 환갑잔치에도 복숭아 모양의 떡을 쌓아놓았고, 전통 결혼식에서는 복숭아 모양으로 종이를 오린 전통 문양의 전지를 붙였다. 이는 복숭아가 장수의 상징인 데다가 생명의 상징인 만큼 다산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아이를 많이 낳고 부부가 행복하게 해로하라는 의미다. 예전에 병문안을 갈 때 주로 복숭아 통조림을 들고 갔던 것도 복숭아에 담긴 장수와 액땜, 그리고 생명력의 회복이라는 민속적 의미가 담겨있다고 풀이한다. 복숭아에는 귀신을 쫓는 힘도 있다. 그래서 복숭아 또는 복숭아나무는 액땜의 기능도 한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풍속이지만, 옛날에는 섣달그믐이면 도부라는 부적을 대문에 걸었다. 복숭아 부적이라는 한자 뜻 그대로 복숭아나무로 만든 판자에 울루와 신도라는 신의 얼굴을 그리거나 글씨를 써놓은 것인데, 새해를 맞아 나쁜 기운을 쫓는 액땜의 의미가 있다. 동양에서는 제사상에 복숭아를 놓지 않는다. 복숭아가 귀신을 쫓아내는 만큼 혼령이 된 조상님이 복숭아가 무서워 제사 음식을 드시러 찾아오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새해가 되면 신년을 맞이하는 연화라는 그림으로 벽을 장식한다. 화교가 운영하는 우리나라 중국 음식점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소재는 축복과 길상의 상징물이다. 복숭아는 장수와 축복 액땜을 비롯한 다양한 상징적 의미가 있다. 옛날부터 어린 소녀가 복숭아를 먹으면 피부가 좋아지고 예뻐진다고 했다. 특히 예전 우리나라에서는 달밤에 복숭아를 먹으면 미인이 된다는 속설이 있었는데, 달콤한 복숭아에는 벌레가 많이 꼬이기 마련이니 등불 없는 어두운 밤에 먹어야 별다른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었던 모양이다.
복숭아가 지닌 다양한 상징성
복숭아는 천상 세계의 과일이자 신선의 열매였고, 장수, 축복, 액땜, 다산의 상징이다. 복숭아가 이 같은 다양한 상징성을 지니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귀신이 복숭아를 무서워한다는 믿음과 관련해서는 1세기 한나라 때 왕윤이 쓴 『논형』에 고대 중국 신화를 인용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있다. "창해에 도삭산이 있는데 그 위에 큰 복숭아나무가 있다. 구불구불 구부러진 것이 삼천리를 뻗었다. 가지 동북쪽에 문이 있어 모든 귀신들이 그 문으로 출입한다. 그 문에 두 명의 신이 있는데 한 명은 신도, 다른 한명은 울루라고 한다. 두 신은 천제의 명에 따라 문을 지키며 귀신을 감시하는데 해악을 끼치는 귀신이 있으면 끈으로 묶어 호랑이에게 먹이로 던져주었다." 복숭아는 먼 옛날부터 먹었던 몇 안 되는 최초의 과일 중 하나였고, 누구나 비교적 쉽게 먹을 수 있는 친숙한 과일이었다. 그러기에 옛날 동양에서는 모든 과일이 기승전 복숭아로 통했다. 새롭고 낯선 과일이 전해지면 대부분 복숭아라는 이름을 지었을 정도였다. 예컨대 견과류인 호두는 서역에서 전해진 복숭아라는 뜻에서 호두가 되었다. 앵두는 보석을 닮은 작은 복숭아, 또는 앵무새가 즐겨 먹는 복숭아라는 의미에서 앵도다. 키위의 한자 이름은 미후도인데 원숭이가 좋아하는 복숭아라는 뜻이 되고, 포도는 지금은 다른 한자를 쓰지만 고문헌에 적힌 포도의 한자는 갯가의 갈대에서 열리는 복숭아를 닮은 열매라는 뜻에서 포도였다. 포도의 어원은 고대 페르시아인 부다와를 음역한 것이라고 하지만 한자로 이름을 지을 때 복숭아와 연결 지었다는 점에서 동양에서 복숭아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이렇듯 고대 동양에서는 복숭아가 쉽게 따먹을 수 있고 생존을 보장해 주는 열매였기에 과일의 대명사, 그리고 천상의 열매이며 신의 열매이자 불로장생의 과일이 된 것이 아닐까?
복숭아는 불로장생과 장수를 상징하는 과일이다
복숭아는 단순한 과일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불로장생과 장수를 상징하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 과일이다. 중국에서는 복숭아가 '불사의 과일'로 여겨졌으며, 도교 신화에서는 서왕모가 신선들에게 불사의 복숭아를 나누어 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 전설에 따르면 서왕모가 키우는 천도복숭아는 3,000년에 한번씩 열매를 맺으며, 이를 먹으면 영원히 늙지 않고 살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믿음 덕분에, 복숭아는 중국에서 왕실의 연회나 축제 때 장수를 기원하는 상징적인 음식으로 사용되었으며, 복숭아 모양의 빵이나 장식품도 인기가 많았다. 한국과 일본에서도 복숭아는 장수를 기원하는 과일로 여겨졌으며, 조선 시대에는 왕실에서 복숭아를 귀한 과일로 여겨 특별히 관리하기도 했다. 지금도 복숭아는 단순한 과일이 아니라, 건강과 장수의 상징으로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과일이다.
복숭아는 원래 털이 없었다
복숭아 하면 부드러운 털이 있는 과일을 떠올리지만, 사실 원래 복숭아는 털이 없는 품종이 더 일반적이었다. 복숭아의 기원은 약 4,000년 전 중국에서 시작되었으며, 당시 야생 복숭아는 현재 우리가 아는 털 복숭아와 달리 매끈한 표면을 가진 과일이었다. 이후 품종 개량이 진행되면서, 자연 돌연변이로 인해 털이 있는 복숭아가 등장했고, 이 품종이 더욱 달콤하고 풍미가 깊어 재배가 확산되었다. 하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털 없는 복숭아를 선호하며, 이 복숭아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복숭아와 함께 인기있는 과일로 자리 잡았다. 털 없는 복숭아와 일반 복숭아는 유전적으로 거의 동일한 과일이지만, 단 하나의 유전자 변이로 인해 털이 있는지 없는지가 결정된다는 점이 흥미로운 사실이다. 즉 우리가 아는 복숭아는 원래 털이 없는 상태였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변형된 결과라는 점이 매우 독특한 과일의 진화 과정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