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 / 2022. 11. 1. 16:12

먹으면 신선이 된다는 과일,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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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사진
탐스러운 배

먹으면 신선이 된다고 불렸던 배에 대한 이야기이다. 동서양을 넘나드는 신들의 과일이었다는 이야기, 전설의 함소리부터 조선 곳곳 명산지 이야기, 요리 재료로 쓰이는 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동서양을 넘나드는 신들의 과일

동양과 서양 모두에서 배는 신들이 사는 곳에서 자라는 나무의 열매였다. 심지어 동양에서는 배를 먹은 인간이 신선이 됐을 정도다. 기원전 2세기, 한 무제 때 삼천갑자 동방삭이 편찬했다는 『신이경』이라는 책이 있다. 여기에 특별한 나무가 나온다. 이 나무의 과일을 먹으면 산속의 신선이 될 수 있으며 옷을 입어도 헤지지 않고, 곡식을 먹지 않아도 되며 물과 불 속으로도 능히 들어갈 수 있다. 무슨 까닭인지 배를 마치 전설 속 나라, 신비한 나무에서 열리는 마법의 열매처럼 묘사해 놓았다. 4~5세기 동진때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한무내전』에도 배는 하늘나라의 열매로 나온다. 하늘에는 약이 있으니 어둠 속에서 빛나는 배라는 과일이라고 적혀있다. 해석하면 우주 최고의 과일이라는 말인데 곤륜산에 사는 최고의 여신 서왕모가 이런 배를 먹고 불사의 여신이 됐다고 한다. 기원전 9세기 그리스 시인 호머는 『오디세이』에서 배를 신의 정원에서 기르는 과일로 묘사해 놓았다. 오디세우스가 파이아케스인들이 사는 나라에 들렸을 때 신전의 정원에서 자라는 배를 보았다고 나온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는 서기 546년의 고구려 양원왕 2월 왕도에서 두 그루의 배나무가 서로 가지가 이어지는 연리지 현상이 있었다고 기록한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한반도에 배나무가 자랐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지만 서로 다른 두 나무의 가지가 이어지면서 하나가 되는 연리지 현상을 통해 배나무가 범상치 않은 나무, 상서로운 나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전설의 함소리부터 조선 곳곳 명산지까지

옛날 동양에서는 배를 하늘의 과일, 신선의 열매로 여겼으니 그 맛에도 환상을 품었다. 그러다 보니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유명한 배가 있었으니 '함소리'라는 배다. 이 배는 향이 그윽한 데다가 물이 아주 많아서 한입 깨물면 입안에서 파도가 친다고 한다. 그래서 입에 물면 물처럼 사라진다고해서 이름도 함소리가 됐다. 함소리는 물 많고 맛있는 배의 대명사가 됐으니 『본초강목』에는 향기로운 즙이 넘치는 최상품의 배로 능히 병도 치료할 수 있다고 적었다. 또 다른 전설의 배로 '교리'가 있다. 맛있기는 엄청 맛있었나 보다. 조선 중기 이응희는 『옥담시집』에서 "깨물어 먹으면 눈을 입에 머금은 듯 / 삼키면 서리를 먹는 것 같네 / 속세의 번뇌가 사라지니 / 굳이 신선의 음료를 마실 필요가 없네"라고 노래했다. 이렇게 맛있으니 교리는 사람들이 먹는 보통 배가 아니라 신선들이 먹는 과일이라고 여겼다. 전설의 배까지는 아니어도, 이름이 알려진 배는 꽤 많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규경은 황해도 신계와 곡산은 난리가 유명하고 황주와 봉산은 설향리가 좋다고 했다. 황해도가 배로 유명했다는 것인데 '난리'는 껍질이 얇고 맛이 아삭아삭한 품종이라고 했으니 지금의 신고배와 비교된다. 설향리는 눈처럼 하얗고 향기가 퍼지는 배라는 뜻인데 자세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또 강원도 정선에는 금색 배가 나고 평안도는 검은 배가 자라며 석왕사에는 붉은 배가 있으니 예전 조선은 전국이 배 명산지였던 모양이다. 

요리 재료로 쓰이는 배

배의 원산지는 동쪽으로는 중앙아시아 천산산맥 구릉지대, 서쪽으로는 코카서스산맥 아래쪽으로 본다. 지금의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그리고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지역이다. 옛날 동양에서 서역이라고 부르던 곳이다. 여기서 동쪽으로는 중국과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서쪽으로는 그리스, 로마를 거쳐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이후 배는 서쪽으로 전해진 조롱박 모양의 서양배와 동쪽으로 전해진 북방형인 중국배, 남방형인 한국, 일본배로 나누어진다. 그런데 동양에서 배는 주로 과일로 진화한 반면 서양에서는 과일이면서 동시에 요리 재료로 쓰였다. 기원전 1세기와 서기 1세기는 로마제국이 전성기에 접어들었을 때다. 이 무렵 배 요리가 집중적으로 보이는데 부유해진 로마 상류층에서 귀한 과일인 배를 이용한 요리를 만든 것인지, 혹은 이때부터 배가 흔해져 음식 재료가 된 것인지는 확실히 알 수가 없다. 다만 로마시대부터 지금까지 서양 배는 과일인 동시에 음식 재료로 많이 쓰인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배를 음식으로 먹는 경우가 드물다. 냉면을 먹을 때 배 한 조각을 얹어 시원한 맛을 더하거나, 동치미, 나박김치 등에 넣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옛날에는 배를 쪄서 먹는 경우도 많았던 모양이다. 사실 옛날에는 야생의 돌배나 산에서 자라는 산배를 주로 먹었을 것이니, 요리를 하지 않으면 먹기가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역시 좋은 배는 아삭아삭 신선하게 과일로 먹는 것이 최고다. 그래서 생리증식이라는 사자성어까지 생겼다. 날로 먹어야 할 맛있는 배를 쪄서 먹는다는 말로, 쓸데없는 짓을 하는 답답한 사람, 뭐가 좋고 그른지 동서남북 구분을 못하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배는 기침을 멈추게 하는 천연 감기약이다

배는 단순히 맛있는 과일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천연 감기약으로 사용된 과일이다. 특히 한국과 중국에서는 배가 기관지 건강을 보호하고, 가래를 줄이며, 기침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어, 감기에 걸렸을 때 배를 이용한 다양한 민간요법이 전해지고 있다. 배에는 '루테올린'이라는 항염 성분이 포함되어 있어 목의 염증을 완화하고, 가래 생성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래서 배를 꿀과 함께 끓여 먹는 '배숙'이나, 배즙을 만들어 마시는 방법이 전통적으로 사용되었다. 중국에서는 배를 찌거나 삶아서 따뜻하게 먹으면 감기 증상이 빠르게 호전된다고 믿었으며, 실제로 따뜻한 배즙은 목을 부드럽게 하고 기침을 가라앉히는 데 효과적이다. 현대 연구에서도 배의 항산화 성분이 면역력을 강화하고, 호흡기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이유로 배는 단순한 과일이 아니라, 자연이 준 건강식품으로 감기 예방과 기관지 보호에 좋은 과일로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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