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일등공신이었던 오렌지 이야기이다. 오렌지의 고향을 찾아서, 향료와 의약품으로 사랑받은 오렌지, 오렌지를 사랑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고향을 찾아서
귤은 주산지가 제주도지만 원산지는 중국 남부로 본다. 오렌지의 고향은 어디일까? 얼핏 남북미 대륙이거나 아니면 기후가 온화한 유럽의 지중해 일대일 것 같지만 아니다. 오렌지의 고향은 동양이고, 구체적으로는 인도 북부와 서남아, 동남아와 중국 남부다. 그렇기에 오렌지는 근대 이전까지 유럽에서는 보기 힘든 동방의 수입 과일이었다. 동양에서 가져오는 귀한 약재였으니 오렌지를 취급하는 상인은 큰돈을 만질 수 있었고, 르네상스를 이끈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 시조가 처음 오렌지 무역으로 부를 쌓을 수 있었던 배경이다. 먼저 오렌지의 역사를 살펴보자. 오렌지라는 이름은 실은 향기롭다는 뜻이다. 영어 오렌지의 어원을 추적하면 프랑스어를 거쳐 고대 아랍어와 페르시아어인 나랑으로 이어진다. 이 단어가 이탈리아어로 전해지면서 앞에 부정관사가 붙으며 변한 것이 영어 오렌지다. 영어와 프랑스, 이탈리아어로 오렌지의 어원은 고대 인도의 산스크리트어에서 찾지만, 독일어로 오렌지는 아펠지네, 네덜란드어 사니사펠의 어원은 중국과 관련 있다. 모두 중국 사과라는 뜻이다. 이들 나라에는 오렌지가 중국 남부로부터 전해졌기 때문이다. 오렌지가 원래 동양 과일이라면, 왜 예전 우리나라에는 오렌지가 알려지지 않았던 것일까? 사실은 우리가 오렌지를 몰랐던 것이 아니다. 다만 별로 주목하지 않았을 뿐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는데 귤이라는 더 맛있는 과일이 있었던 데다 품종개량되기 전의 오렌지는 그다지 맛있는 과일은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향료와 의약품으로 사랑받은 오렌지
오렌지는 언제 서양에 전해졌을까? 오렌지를 포함한 감귤류의 족보와 계보가 너무 복잡하다. 그럼에도 최대한 단순화해서 구분하면, 오렌지는 크게 쓴 오렌지와 단 오렌지로 나뉘는데, 지금 우리가 오렌지라고 부르며 먹는 것들은 단 오렌지에서 파생된 것들이다. 단 오렌지는 15세기 무렵 유럽에 전해졌다. 1450년 이탈리아 북부 제노아의 상인이 아랍과의 무역을 통해 달콤한 오렌지를 지중해 지역에 전해졌고, 본격적으로 퍼진 것은 16세기 포르투갈 상인들 덕택이고, 뒤를 이어 네덜란드 상인들이 오렌지 무역에 뛰어들면서 중국 남부 및 동남아, 서남아로부터 오렌지를 유러으로 실어 날랐다고 한다. 쓴 오렌지는 문자 그대로 쓴맛 때문에 과일로 먹기에는 부적합했다. 대신 향이 강해서 주로 향수나 향료의 원료 또는 의약품으로 사용했다. 그렇기에 과일로 먹는 달콤한 오렌지보다는 훨씬 더 효용 가치가 높았다. 한편 식용으로 먹을 경우에는 꿀을 첨가해서 잼 비슷하게 마멀레이드로 만들어 먹었다. 오렌지의 조상이 되는 감귤류는 5,000년 전까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쓴 오렌지, 단 오렌지, 레몬과 라임 등등 감귤류 열매가 전해질 때마다 서양 세계에 직접적, 간접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유는 감귤류가 워낙 귀하고 특별한 과일이었기 때문이다. 오렌지에 앞서 서양 세계에 최초로 전해진 감귤류는 시트론이라는 열매다. 영어로 감귤류를 뜻하는 시트러스의 어원이 되는 열매인데,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로 향기 나는 나무인 세다르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시트론은 오렌지, 레몬, 귤, 유자, 자몽 등 모든 감귤류의 뿌리가 되는 열매다. 감귤류 원품종 중 하나인 시트론이 유럽에 전해진 것은 기원전 5~4세기 무렵이다. 시트론은 인도와의 향료 교역로를 따라 페르시아를 거쳐 그리스 등의 지중해, 그리고 로마로 전해졌다. 고대 서방세계에 전해진 시트론은 먹는 과일이 아닌 향수의 원료, 의약품으로 사용됐다. 시트론은 로마제국에서는 꽤 널리 퍼졌던 것으로 보인다. 서기 1세기 이전 로마제국의 최대 상업도시, 폼페이의 정원에서 시트론 씨앗이 발견됐고, 로마시내 광장에 있는 식물원에서도 시트론을 키운 흔적이 있다고 한다. 다만 식물원 유적과 귀족의 정원 구조에 비춰볼 때 고대 로마에서 시트론은 높은 사회적 신분 계층에서만 재배할 수 있었던 최고의 식물이었다. 유럽에 전해진 단 오렌지는 그 새콤달콤한 맛 때문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물론 19세기까지 오렌지는 아무나 먹을 수 있는 과일은 아니었다. 주로 귀족과 부자들이 먹는 최고급 과일이었다. 케이크를 비롯한 각종 디저트에 오렌지를 토핑으로 얹은 이유도 그만큼 오렌지가 귀족 취향의 과일이었기 때문이다. 19세기 이전까지 식후에 먹는 디저트는 그 자체가 상류계층에서 즐겼던 음식 문화였기 때문이다.
오렌지를 사랑한 사람들
10세기에 전해져 향수, 약재의 원료로 쓰였던 쓴 오렌지나 15세기에 전해져 달코한 과일로 먹었던 단 오렌지나, 유럽에서는 모두 상류층이 즐겼던 최고급 과일이었다. 그러기에 오렌지는 부의 상징이었고 풍요와 번영의 아콘이었으며 다산과 순결의 심볼이 됐다. 지금까지도 알게 모르게 곳곳에서 그 상징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일단 오렌지꽃은 하얗기에 순수와 순결을 의미하고 오렌지 자체도 상류계층의 고급 과일이기에 우아함과 고급스러운 부의 상징이었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 과일은 꽃이 진 후 그 자리에 열매가 열리진 오렌지는 꽃과 열매가 동시에 달린다. 그렇기에 오렌지를 풍요와 다산, 생명력의 심벌로 여겼던 것이다. 오렌지가 풍요의 상징이었던 흔적은 또 있다. 식물원은 영어로 보태니칼 가든이다. 온실재배를 필요로 하는 모든 식물을 망라하는 개념이다. 단순히 온실재배만을 강조할 때는 그린하우스라는 말을 많이 쓴다. 하지만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유럽 왕실 소유의 고급 식물원, 특히 아열대 식물을 키우는 온실재배 식물운은 오랑주리라고 한다. 오렌지의 위상은 전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른바 오렌지 전쟁이다. 1801년 나폴레옹 시대의 프랑스와 스페인이 연합해 포르투갈을 침공해 약 두 달 만에 끝난 잊힌 전쟁이지만 나름 의미는 있다. 나폴레옹 몰락의 도화선이 됐기 때문이다. 1800년, 프랑스가 영국 편에 선 포르투갈에게 관계를 끊을 것을 강요했다. 군함을 포함한 영국 선박의 포르투갈 항구 정박을 금지하고, 영토 일부를 프랑스가 양도하며, 프랑스-스페인 동맹에 가담하라는 요구였다. 영국 해군을 무력화하려는 시도였다. 포르투갈이 거절하자 프랑스군과 마누엘 델 고도이 장군이 이끄는 스페인군이 연합해 포르투갈을 공격했다. 전쟁은 두 달 만에 끝났고 그 결과 포르투갈은 프랑스, 스페인과 바다호스 조약을 맺는다. 영국 선박의 포르투갈 항구 사용 금지와 영토 일부를 스페인에 양도한다는 내용이다. 오렌지 전쟁은 이때 붙여진 이름이다. 유럽에서 오렌지와 특히 관계 깊은 나라가 네덜란드다. 대항해시대에 동남아와 중국 남부에서 단 오렌지를 가져와 유럽에 퍼트렸고 심지어 왕실도 오렌지 가문이다. 뿐만 아니라 나라의 상징색도 오렌지색, 축구팀은 오렌지 군단이다. 미국 뉴욕시의 상징 색에도 오렌지색이 들어가는데 이 역시 네덜란드와 관련 있다. 뉴욕시의 기원은 예전 네덜란드 사람들이 개척한 뉴암스테르담에서 시작됐다. 이를 기념해 뉴욕시의 상징에도 오렌지색이 들어간다.
오렌지는 자연에서 존재하지 않는 인간이 만든 과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렌지를 자연에서 자생하는 과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오렌지는 인위적으로 개량된 과일이며, 자연 상태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과일이다. 오렌지는 약 4,000년 전 고대 중국에서 '포멜로'와 '만다린'을 교배하여 만든 하이브리드 과일이다. 원래 자연 상태에서는 포멜로와 만다린이 따로 존재했지만, 인간이 더 달콤하고 즙이 많은 과일을 만들기 위해 두 과일을 인위적으로 교배하면서 오렌지가 탄생했다. 이후 오렌지는 인도의 무역로를 통해 중동과 유럽으로 전파되었으며, 15세기경 포르투갈 상인들이 오렌지를 유럽 전역에 퍼뜨리면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오렌지가 널리 보급되었따. 특히, 오렌지는 다양한 품종으로 발전하면서 네이블 오렌지, 발렌시아 오렌지, 블러드 오렌지 등 서로 다른 맛과 특징을 가진 여러 가지 변종이 등장하게 되었다. 즉, 우리가 익숙하게 먹는 오렌지는 자연에서 발견된 과일이 아니라, 수천 년 동안 인간이 개량하여 만든 특별한 과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