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초에서 약으로 탈바꿈한 토마토의 이야기이다. 독을 가지고 있어 불길한 열매였던 이야기, 토마토소스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이야기, 조선에서는 쓸모없는 잡초 열매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독을 가지고 있던 불길한 열매
토마토는 이탈리아와 중국 정도를 제외하면 세계 여러 나라에서 대부분 토마토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현지 언어에 따라 발음에 약간씩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옛날에는 달랐다. 나라마다 따로 독특한 이름이 있었다. 이를테면 프랑스에서는 폼다무아, 즉 사랑의 열매(과일)라고 했다. 예전 조선에서는 일년감, 풀감, 당나라감 등등 이름이 다양했다. 중국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예전부터 서양 홍시 또는 외국 가지라고 했다. 학명은 늑대의 복숭아였다. 토마토의 옛 이름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대부분 먹지 못하는 열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토마토가 옛 이름을 버리고 지금의 명칭으로 불리게 된 것은, 빨간 토마토가 나오면 의사 얼굴이 파랗게 질린다는 이탈리아 속담처럼, 실제로는 건강에 좋은 과일이고 채소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부터다. 중미가 원산지인 토마토의 어원은 고대 아즈텍 사람들이 쓰던 언어 나화틀어에서 비롯됐다. 부풀어 오른 과일, 탱탱한 열매라는 뜻이다. 토마토처럼 오랜 세월 극심한 오해와 편견에 시달리며 배척당했던 작물도 드물다. 토마토가 독초라는 옛 유럽과 미국의 편견이 단순히 오해와 무지 때문에 생겨난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옛날 유럽에서 사용했던 식기가 중독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18~19세기 유럽 귀족이나 부유한 평민들은 대부분 백납으로 된 나이프와 스푼, 접시 등을 사용했다. 영화에서 보는 것과 같은 반짝반짝 빛나는 은식기는 왕실이나 고위 귀족이 아니면 사용하기 힘든 최고급 식기였다. 백납 식기는 주성분이 납이었고, 토마토에 포함된 산성과 만나면 반응이 빨라져 납 성분을 비롯한 독성 물질이 더 많이 배출되면서 중독 증상을 일으키기가 쉬었다. 그 당시에는 토마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반면 서민들과 하층민들은 오히려 토마토로 인한 중독이 거의 없었다. 서민층에서는 대부분 나무를 깎아 만든 스푼과 그릇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토마토소스가 만들어지기까지
원산지인 중남미에서는 진작부터 토마토를 먹었지만 그렇다고 처음부터 인기 작물이었던 것은 아니다. 토마토 원 품종은 크기가 완두콩만 했는데, 원주민들은 이를 개량해 다양한 소스로 만들어 먹었다. 최초로 토마토 기록을 남겼다는 이탈리아 의사 겸 식물학자 마티올리는 신대륙에서 온 새로운 가지는 붉은 빛 혹은 황금색으로 완전히 익으면 쪼개서 먹을 수 있다면서 소금, 후추, 올리브오일 등으로 양념해 가지처럼 요리한다고 적었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은 열매였던 만큼 관상용 화초로 키우는 경우가 많았다. 토마토가 처음 요리로 등장한 것은 1692년 무렵이다. 나폴리를 통치하던 스페인 총독의 요리사가 발행한 요리책에 처음 보인다. 이 책은 스페인 요리책을 거의 베낀 것이라고 하니까 토마토 요리는 일단 스페인에서 시작해 이탈리아로 전해진 것으로 짐작된다. 나폴리를 중심으로 토마토소스가 발달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나폴리가 더운 지방이어서 아열대 지방에서 잘 자라는 식물이었던 토마토의 재배 조건에 맞았다는 것이다. 또 나폴리는 가난한 농촌 지역이었기에 농부들이 이것저것 가릴 형편이 되지 않아 토마토를 먹었다는 설도 있다. 한편 미국에서는 토마토가 19세기 중반 이후에 널리 퍼진다. 바로 남북전쟁 때문이었는데 남북이 모두 먹을 것이 부족해지자 토마토를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먹다 보니 독성도 없고 맛도 좋아 널리 퍼지게 됐다는 것인데, 어쨌거나 토마토가 널리 퍼지게 된 데에는 가난과 전쟁 등으로 인한 굶주림이 큰 몫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조선에서는 쓸데없는 잡초 열매
임진왜롼 이후 전해진 토마토에 대해 당시 조선 선비들은 무척 낯선 인상을 받았던 모양이다. 먹지도 못하고 기껏해야 관상용으로나 키울 수 있는 작물 내지는 아예 잡초 취급했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는 토마토 식용 역사가 유난히 짧다. 광해군 이후 조선시대 문헌에서는 토마토에 관한 기록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규경은 영정조 때 성호 이익과 다산 정약용이 토마토에 관해 많은 저술을 남겼지만 기록을 찾을 수가 없다며, 얼마나 자료가 없었으면 토마토에 대해 아는 것이 풀벌레만도 못하다며 답답해했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는 토마토가 처음 소개된 이후 줄곧 이상한 과일 내지는 못 먹는 땡감 취급을 받았다. 그러다 19세기말부터 토마토를 재배하려는 시도가 보인다. 고종 20년 서양 원예작물 재배를 장려하기 위해 서양 채소 종자를 도입하는데 여기에 토마토 종자도 포함돼 있다. 그렇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본격적인 재배가 이뤄진 것은 20세기, 그것도 1930년대를 전후해서이다. 이 무렵에는 토마토를 일년감이라고 불렀다. 그러면서 누구나 재배할 수 있고 또 영양소도 풍부한 과일이라며 일년감 재배를 장려하는 신문기사가 자주 보인다. 그러다 1950년이 지나면서 토마토라는 이름이 자리 잡는다.
토마토는 우주에서도 재배된 채소다
토마토는 우주에서 재배된 몇 안 되는 채소 중 하나로, NASA는 우주 비행사들에게 신선한 채소를 공급하기 위해 '토마토 재배 실험'을 진행해 왔다. 1995년 NASA와 러시아 우주국은 국제 우주정거장(ISS)에서 토마토를 포함한 여러 식물을 우주에서 키우는 프로젝트를 수행했으며, 실험 결과 토마토는 우주에서도 잘 자랄 수 있는 식물임이 확인되었다. 이후 2020년에 NASA가 난쟁이 품종의 토마토를 우주에서 성공적으로 재배하면서, 미래 화성 탐사 및 장기 우주여행에서 중요한 식량 자원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토마토는 비타민과 항산화 성분이 풍부하며, 성장 속도가 빠르고 물이 적게 필요하기 때문에 우주에서 재배하기 적합한 채소가 되었다. 이러한 연구는 우주에서 자급자족 할수 있는 식량 시스템 개발을 위한 중요한 단계이며, 언젠가 인간이 화성에서도 토마토를 직접 키워 먹을 날이 올지도 모른다.
토마토는 감정을 조절하는 '행복한 채소'이다
토마토는 단순한 영양 공급원이 아니라, 기분을 조절하고 행복감을 높이는 채소로도 잘 알려져 있다. 토마토에는 감정을 안정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신경전달 물질인 '세로토닌'의 생성을 촉진하는 비타민 B6가 풍부하게 포함되어 있어, 스트레스를 줄이고 기분을 좋게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또한, 토마토의 라이코펜과 비타민 C는 뇌의 산화 스트레스를 감소시키고, 기억력과 집중력을 향상 시키는 역할을 한다. 연구에 따르면, 토마토를 자주 섭취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우울증 발생률이 낮다는 결과가 보고된 바 있으며, 일본에서 진행된 한 연구에서는 주 2~6회 토마토를 먹는 노인들이 더 긍정적인 감정을 유지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따라서 토마토는 단순히 몸에 좋은 채소를 넘어 '마음을 안정시키고 행복감을 증진시키는 자연이 준 감정 조절 식품'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