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 / 2022. 10. 13. 22:02

교황이 사랑한 과일, 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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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론 사진
잘 익은 멜론

교황과 왕의 입맛을 사로잡다

옛날 유럽에는 유별나다 싶을 정도로 멜론을 사랑한 사람이 많았다. "설마 그 정도까지..."라고 할 정도로 전설 같은 에피소드를 남긴 인물도 여럿 있다. 그중 한 명이 15세기 후반의 교황 바오로 2세였다. 1471년 7월 26일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선종했는데 사망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소문이 있지만 멜론을 지나치게 많이 먹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멜론 과식으로 인한 사망설인데 얼마나 멜론을 좋아했는지 입에 달고 살다시피 했다고 한다. 선종 당일에도 식후 디저트로 멜론을 잔뜩 먹고 갑작스레 소화장애를 일으켜 쓰러져 심장마비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먼 옛날부터 유럽에서는 멜론을 많이 먹으면 소화 불량으로 고생한다고 믿었다. 그렇다면 교황 바오로 2세를 사로잡은 멜론의 매력은 무엇이 있을까? 교황이 먹었던 멜론은 머스크멜론인데, 머스크는 페르시아어로 사향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사향처럼 향기로운 맛이 나는 멜론이라는 뜻이다. 그중에서 바오로 2세가 먹었던 멜론은 훗날 품종개량을 통해 더 유명해졌는데, 바로 캔털루프 멜론이다. 정식 명칭은 사비나언덕에 있는 '칸탈루포라'로 늑대가 울부짖는 곳이라는 다소 살벌하고 황량한 의미에서 비롯된 곳이다. 이곳은 중세시대 교황의 여름 별장과 직속 영지가 있던 곳인데, 이런 마을이 엉뚱하게 멜론 품종 이름이 된 것은 페르시아 지방에서 전해진 사향처럼 향긋하고 달콤한 맛이 나는 멜론이 유럽에서 처음으로 이 마을에서 재배됐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재배하 멜론은 주로 교황의 식탁에 올랐다. 211대 교황인 바오로 2세에 이어 213대 교황인 이노센트 8세도 멜론을 좋아해서 식사 전, 멜론을 반으로 자른 후 여기에 와인을 부어 반주로 마셨고 아침에 일어나 바로 멜론을 먹었을 정도로 멜론 광이었다고 한다. 약 100년 지난 1605년에 선종한 클레멘트 8세 역시 멜론을 지나치게 먹어 성인병에 시달렸다는 미확인 루머도 있다. 중세 이후 유럽 최고의 권력자였던 역대 교황들이 그만큼 멜론을 사랑했던 모양이다. 카바용은 프랑스 서부의 샤랑트와 함께 프랑스를 대표하는 멜론 산지로 유명하다. 이 두 곳에서 나오는 카바용 멜론과 샤랑트 멜론은 미식의 나라 프랑스에서 식도락가들이 즐겨 찾는 최고급 과일이다. 카바용 멜론 역시 바오로 2세가 먹었던 멜론처럼 머스크멜론, 그중에서 캔털루트 멜론의 한 종류인데, 카바용 멜론이 유명해진 이유는 맛도 맛이지만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15세기말 프랑스 왕 샤를 8세는 프랑스 왕이지만 유럽 왕실의 복잡한 혼인 관계로 이탈리아 나폴리 왕국에 대한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다 갈등을 빋었고 1495년 전쟁을 일으켜 이탈리아로 쳐들어가 나폴리 국왕에 즉위했다. 하지만 샤를 8세의 나폴리 통치에 반대하는 교황과 오스트리아, 밀라노, 베네치아 왕국 연합군에 패해 다시 프랑스로 퇴각한다. 카사바 멜론은 이때 이탈리아에서 새로운 멜론, 즉 페르시아에서 전해졌다는 향긋하고 달콤한 사향 냄새의 머스크멜론 종자를 가져다 심은 것이다. 로마 교황과 프랑스 왕이 한눈에 반했다는 맛이었으니, 일반 프랑스 백성들한테는 멜론 맛이 얼마나 황홀하게 느껴졌을지 짐작되는 부분이다. 그래서 300년이 지난 19세기 알렉상드르 뒤마가 살았던 시대에도 명성이 이어졌던 모양이다.

 

동양의 멜론, 하미과

중국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한 하미과라는 과일이 있다. 중국 서부 신강 위구르 자치구에 있는 도시인 하미시에서 주로 재배하는 과일인데, 대다수 한국인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과일이기에 설명을 하자면, 크기는 수박만큼 크지만 수박은 분명히 아니고 참외라고 부르기에는 엄청 큰 데다가 달기도 달아서 참외 종류라고도 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멜론이라고 하기에도 어색한 것이 아삭아삭한 식감과 함께 맛 또한 멜론과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미과를 맛본 한국인들이 그 정체를 궁금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하미과의 식물학적 정체는 머스크멜론의 한 종류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머스크멜론의 변종인 캔털루프 멜론 계열이니까, 교황 바오로 2세나 프랑스 왕 샤를 8세 내지 알렉상드르 뒤마가 그 맛에 푹 빠졌다는 멜론과 같은 계열이다. 하지만 품종개량을 통해 또 다르게 진화했기 때문인지 일반적인 머스크멜론과는 상당히 다른 맛이다. 그렇기에 수박인지 멜론인지 참외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강희제 때 서역 하미국의 참외(멜론)가 중국에 조공으로 보내졌던 것은 분명하다. 청나라 문헌인 『신강회부지』에 강희 초부터 하미에서 멜론을 공물로 보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현재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하미시에서 북경까지는 직선거리로 약 2,200km다. 서울과 부산까지의 약 5배에 이르는 머나먼 거리를 무릅쓰고, 쉽게 상하는 과일을 공물로 보낼 만큼 맛이 좋긴 했던 모양이다.

 

페르시아에서 다시 유럽으로

멜론은 지금도 값싼 과일은 아니지만 수십 년 전에는 서민이 쉽게 사먹을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비싼 과일이었다. 수입 자유화 이전에는 관세가 왕창 붙는 수입 과일이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에는 미국에서도 수입 멜론이 사치스러운 고급스러운 과일로 분류되어 고율의 관세가 매겨졌다. 그러나 알고 보면 멜론이 처음부터 비싼 과일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교황과 황제가 깜빡 죽을 정도로 그렇게 맛있었던 과일도 아니었다. 오히려 맛이 특별할 게 없었고, 그래서 고대에는 과일이 아닌 채소로 취급해서 주로 소금이나 꿀, 향신료를 곁들여 샐러드로 먹었다. 멜론의 원산지 역시 분명하지 않다. 일반적으로는 아프리카에서 시작돼 이집트와 그리스 로마를 거쳐 페르시아와 인도로 전해지면서 전 세계로 퍼진 것으로 보고 있다. 서유럽의 멜론은 중세까지 우리의 맛없는 참외 수준이었지만, 로마에서 페르시아를 거쳐 아프가니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의 중앙아시아와 인도로 전해진 멜론은 달랐다. <<식물학 연구저널>>에 실린 연구논문에 따르면, 페르시아와 아랍 문헌에서는 9~10세기 무렵부터 달콤하고 향기로운 멜론에 곤한 기록이 수 없이 보인다고 한다. 9세기 후반 페르시아, 지금의 아르메니아 지방은 향긋하고 달콤한 멜론의 생산지로 이름이 높았다고 한다.

멜론은 과일이 아니라 채소다

많은 사람들이 멜론을 달콤한 과일로 생각하지만, 식물학적으로 멜론은 채소이다. 멜론은 오이, 호박, 수박과 같은 박과 식물군에 속하며, 포도나무처럼 덩굴에서 자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과일이라 부르는 것들은 보통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이지만, 멜론은 땅 위에서 자라는 덩굴식물의 열매이기 때문에 엄밀히 따지면 채소에 해당된다. 실제로 멜론과 비슷한 계통의 식물인 오이나 호박은 흔히 채소로 분류되며, 멜론도 비슷한 방식으로 재배되지만 당도가 높고 과육이 부드러워 과일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일부 지역에서는 멜론을 생과일로 먹기보다 요리에 활용하거나 반찬으로 사용하기도 하며, 피클이나 샐러드에도 자주 쓰이는 등 채소적인 특성도 함께 가지고 있다. 이처럼 멜론은 맛과 쓰임새에서 과일처럼 보이지만, 식물학적으로는 채소로 분류되는 흥미로운 특징을 가진 식물이다.

멜론은 고대 왕들이 즐긴 '왕의 과일'이었다

멜론은 예로부터 귀족과 앙들이 즐기던 고급 과일로 여겨졌으며, 고대 이집트와 로마시대에는 왕족과 귀족들만 먹을 수 있는 귀한 식품이었다. 특히, 고대 이집트에서는 멜론이 풍요와 건강을 상징하는 과일로 여겨졌으며, 파라오의 무덤에서도 멜론의 흔적이 발견될 만큼 귀한 대접을 받았다. 또한, 로마 제국에서는 멜론이 고급 디저트로 사용되었으며, 냉각 기술이 없던 당시에는 눈과 얼음을 이용해 멜론을 차갑게 만들어 먹는 것이 최고의 사치로 여겨졌다. 중세 유럽에서도 멜론은 왕족과 귀족들의 식탁에서나 볼 수 있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멜론의 품질이 왕에게 헌상될 정도로 특별한 대접을 받았다. 이러한 이유로 멜론은 '왕의 과일'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현대에도 고급 멜론 품종(일본의 유바리 멜론과 같은)은 고가의 선물용 과일로 인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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